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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택원장<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 장기기증>무등일보.2013.3.12

 

임선택 보라안과병원 원장 

 

병원 기획실에서 신분증 복사본이 필요하다고 해서 운전면허증을 줬더니  

 복사하고 신분증을 건네주는 직원의 모습이 평소와 달리 약간 경외심 어린 표정이다.


“원장님, 장기기증 하셨네요. 멋진데요?”
면허증 맨 아래에 장기기증자 표시를 본 것이다.

벌써 20여 년 전 이야기다.
안과 레지던트 합격통보를 받고 날아갈듯 한 마음으로 연말 휴가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몇몇 친구들과 스키장 가기로 약속해 놓고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식구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안과 교수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놀면 뭐하나. 모레, 월요일부터는 일도 미리 익힐 겸 출근하소!”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아무 말도 못하고 놀기로 했던 스케줄을 모두 취소했다.

 

날아갈듯 한 마음은 완전 우울모드로 바뀌어 월요일부터 바로 출근을 했다.

나의 첫 겨울철 월요일의 안과외래는 정말 끔찍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점심이 입으로 들어간 건지 코로 들어간 건지도 모르게 그렇게 지나갔다.

 

오후 6시 반쯤 되었을까? 정신이 좀 들었다. 이렇게 4년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힘이 쏙 빠진다.

 

스키장은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윗년차 레지던트가 불쌍했는지 한마디 한다.

 

“임선생, 한 6개월 지나가면 그때부터는 탄력이 붙어서 주욱 가요. 너무 걱정마세요!”

그건 전혀 위로가 안됐다. ‘6개월이나 지나야한다고?’ 허기가 밀려왔다. 그래 밥이나 먹자!
식사 후 병동에서 퇴근 눈치만 보고 있는데 그 레지던트가 갑자기 전화 한통을 받더니 얼굴이 심각해진다.

 

 

“임선생, 첫 출근 하는 날이 장날이네요. 각막 이식 떴어요!”

누군가 돌아가시면서 안구 기증을 한 것이다.

 

안과 인턴 근무 시 야간 응급으로 각막이식수술을 경험해 본 적이 있어서 상황은 대충 안다.

한 팀은 안구 기증하신 분의 시신에서 안구를 적출해야하고 한 팀은 수술실에서 이식 수술에 필요한 준비를 한다.

 

또 한명은 각막이식 수술 받을 대기환자들에게 순서대로 전화를 해서 오늘 밤 수술이 가능한지 계속 연락하고. 

아마 지금은 외국에서 수입된 각막이 많고 각막 보존액도 충분히 갖춰져 있어서 밤중에 응급수술을 많이 하지는 않겠지만

 

그 당시에는 각막보존액이 많이 부족했던지라 대부분 밤을 지새우면서 응급수술을 했었다. 

난 안구적출 팀이 되어서 병원 내에 있는 영안실로 달려갔다. 어쩌다가 돌아가셨나?

 

궁금증은 뒤로하고 내가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상급 레지던트 둘을 따라서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정말 건장한, 키가 180 센티미터는 넘어 보이는 비교적 젊은 남자가 차가운 스테인레스 침대에 누워있었다.

 

짧게 깍은 머리, 뚜렷한 이목구비, 며칠 면도를 안 한 듯한 턱수염이 거무스름하게 턱을 덮고 있었다.

아마 살아있었다면 더 밝은 푸른빛을 띠었을 까? 이렇게 건장한 사람이 어쩌다 죽었을까?

 

잠시 망자를 위한 묵념을 하고 3년차 레지던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두 눈을 적출했다.

일단 안구를 적출하면 얼음이 깔린 이동용기에 조심히 담고 바로 수술실로 가서 이식에 필요한 각막을 조심히 분리해야한다.

 

남은 2년차 레지던트는 적출한 안구대신 눈알 모양의 동그란 구슬을 그 자리에 넣고 겉으로는 전혀 테가 나지 않게 정성을 다해서

 

눈꺼풀을 가는 실로 꿰멘다. 그러고 나면 적출 팀은 상황 종료.

오른쪽 눈을 그렇게 마무리 하더니 “난 얼른 가서 수술실 준비 도와줘야 하니까 임선생이 왼쪽 눈 마무리하고 얼른오세요.”

 

“네에? 아 네!”

그렇게 나는 영안실에 졸지에 혼자 남게 되었다. 아니 혼자가 아닌가? 

살아있는 사람으로는 혼자 남겨진 후로 그 방의 공기 냄새, 온도가 확 바뀌었다. 싸늘하게. 도대체 첫 날부터 이게 무슨 일인가?

 

안과를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별의 별 생각들이 머리를 떠도는데 눈꺼풀을 꿰매는 손이 바르르 떨린다.

 

그래도 나름 마무리 잘하고 흰 포를 다시 덮고 묵념하고 안치실을 뒤로 한 채 걸어 나오는데 다행히 망자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만감이 교차한다. 저 분은 어쩌다 죽었을까? 언제부터 장기 기증 할 생각을 했을까?

 

 

그런 저런 생각이 들면서 방을 나오는데 그 시신이 아름다워 보였다. 아니 그 분이.

그의 두 각막은 이식 수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서 두 환자에게 밝은 빛을 선물했다. 

나도 의대 입학하면서 막연히 생각했었다. 언젠가 장기기증을 신청할 것이라고.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 날 하루는 그냥 힘들고 꼬인 날이 아니었다. 힘들었지만 내 인생에 큰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글을 마무리하며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생각에 머무는 결심보다 실천하는 삶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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