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시력인들의 작은 행복
‘잘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보이는 것도 아니고...’
저시력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가장 쉬운 표현이지 않나 싶다. 안과에서 말하는 저시력이란
교정시력이 0.3이하 이거나 시야가 현저히 좁아져서 일상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많은 경우를 말한다.
사진기의 필름에 해당하는 망막의 가장 중심부를 황반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에 손상이 와서 중심시력이 저하되는 병이 황반변성이다.
이 질환으로 이미 한 눈은 실명하고 다른 눈의 시력이 0.1정도로 겨우 보고 혼자 사시는 60대 초반의 여자 분이 한숨을 내 쉬면서
“남의 도움 없이 영수증이나 계산서 같은 것만 좀 볼 수 있어도 원이 없겠어요.” 하신다.
이럴 때 환자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있다. 바로 저시력 보조기구이다.
저시력 보조기구라는 것이 무슨 대단한 물건은 아니다.
사실 동네 문방구점에서 파는 손잡이가 달려있는 플라스틱 확대경도 일종의 저시력 보조기구이다.
이러한 간단한 확대경부터 컴퓨터 모니터를 이용해 글자를 몇 십 배 이상 확대할 수 있는 것까지 아주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환자 각자의 눈 상태에 맞는 저시력 기구를 고르는 일과 본인이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꾸준히 연습하는 것이다
. 다행히 그 분은 병원에 구비된 저시력 기구들을 이용해 본 결과 핸드백에 넣고 다닐 수 있는 포켓용 8배 확대경과
어두운 곳에서도 사용이 가능한 조명식 8배 손잡이형 확대경을 고르셨는데 이제는 웬만한 영수증은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흡족해 하신다.
의사로서 즐거움이 바로 이런 것.
사실 저시력은 안과영역에서 의료의 사각지대에 속한다. 안과의사로서 레지던트때 부터
줄곧 배우는 것이 병의 원인, 진단, 치료이고, 약을 쓰건 수술을 하건 병의 치료가 끝나면 어느 정도의 장애가 남더라도
그 이후의 대책에는 관심이 멀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저시력 연구회 회원인 필자도 환자가 요청하지 않으면 깜박깜박 그냥 넘어가는 실정이고 환자 눈에 맞게 기구를 적용하는 일은 생각보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하지만 위와 같은 방법들을 동원하면 환자의 생활의 질을 높일 수 있고, 자존심과 독립심을 고취시킬 수 있다.
대략 우리나라의 저시력 인구는 50만 정도로 추정된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저시력인들의 이러한 고통은 본인들의 무지와, 의사들의 무관심, 보건 의료환경의 척박함 때문에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서로가 뜻을 모아 조금씩 더 노력하면 조금 더 볼 수가 있다. 조금 더 행복해 질 수가 있다.
/임선택 보라안과병원 원장